2008년 5월 4일 일요일

국내 멸종 토종 씨앗 34종 반세기만에 돌아온다


국내 멸종 토종 씨앗 34종 반세기 만에 돌아온다 [중앙일보]
미국이 수집해 갔던 재래종 콩·고추·들깨·배추 …
4년 노력 끝 작년 반환 협정
`품종 개량 값진 유전자 자원`



미국이 수집해 갔던 우리의 토종 씨앗이 돌아온다. 콩.팥.시금치 같은 농작물 34종의 씨앗 1679점이다. 지난 5월 4일 목화씨 한 점을 비롯, 지금까지 들깨와 참외 씨앗 280점은 이미 반환됐다. 나머지 1399점은 올해 안에 온다. 현재 이 씨앗들은 국내에서는 멸종돼 찾아볼 수 없다. 농촌진흥청과 미국 농업연구청은 12일 경기도 수원 농진청에서 반환 행사를 열었다.

◆어떤 씨앗인가=1900년대 초까지 국내에서 자라던 야생종이나, 수천 혹은 수백 년 전 우리나라에 들어와 재배돼 온 재래종들이다. 원래 우리나라는 다양한 자생 종자가 있었지만 일제 강점기와 6.25 전쟁을 겪으면서 많은 종자가 국외 유출됐다. 또 식량이 부족했던 시절 조금이라도 많은 양을 수확할 수 있는 개량 품종만 골라 재배하다 보니 어느새 토종 종자는 사라졌다. 70~80년대 국토개발 과정에서도 많은 자생지가 파괴됐다.

반면 미국은 농업 관련 유전 자원(종자)의 중요성을 일찌감치 알고 있었고, 세계 각지에서 다양한 자원을 수집해 왔다. 수집한 유전 자원을 활용해 상품화한 예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미국에서 유명한 '미스킴 라일락'은 서울 북한산의 정향나무가 건너간 것이다. 또 '데이릴리(daylily.하루백합)'는 미국에서 팔리는 우리나라의 원추리다. 콩이 나지 않는 미국이 세계적인 콩 수출국이 된 것도 콩 원산지인 한국에서 가져간 콩 종자 덕분이라는 게 농업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현재 미국이 보유하고 있는 유전 자원은 44만6000여 점. 세계 최대다. 중국은 36만 점, 일본은 20만 점의 유전 자원을 보유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17만6000점. 여기에 이번에 들어오는 1679점이 보태지게 된다.

◆왜 돌려주나=미국이 종자를 돌려주기까지는 4년 넘게 걸렸다. 시작은 2002년 말 미국 농업연구청과 우리나라 농촌진흥청의 기술협력에 관한 양해각서(MOU) 체결이었다. 농진청 관계자는 "이전까지 미국은 한국을 대등한 기술 파트너로 보지 않았지만 90년대 후반 한국이 국가적 차원의 생명공학 투자를 늘리면서 MOU가 가능해졌다"고 말했다. 이후 양측은 다양한 농업기술을 교류해 왔으며, 지난해 12월 미국이 수집해간 한반도 원산 종자 167종(6082점) 가운데 한국에 없는 34종을 반환하는 데 합의했다. 농진청 관계자는 그러나 "반환이라고는 하지만 미국도 우리에게 준 씨앗을 모두 갖고 있기 때문에 나눠줬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제 시대 엄청난 유전 자원을 가져간 일본의 경우 가져간 종자의 리스트조차 공개하고 있지 않다. 또 유전 자원 교류를 포함하는 공동 연구도 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어떻게 쓰이나=농진청은 이번에 돌려받는 토종 종자를 이용해 한국 토양에 맞는 작물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의약품이나 생명공학 분야의 소재로도 활용될 전망이다. 농진청 김대일 박사는 "폭염.장마.폭설 같은 기후적 스트레스가 많은 한반도의 특성을 감안할 때 경쟁력 있는 생물 소재를 개발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박혜민 기자

댓글 없음: